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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텃밭48

나도 그들처럼 나는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계산이 되기 전에는 나는 비의 말을 새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측량되기 전에는 나는 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해석이 되기 전에는 나는 대지의 말을 받아 적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동산이 되기 전에는 나는 숲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시계가 되기 전에는 이제 이들은 까닭 없이 심오해졌습니다 그들의 말은 난해하여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내가 측량된 다음 삶은 터무니없이 난해해졌습니다 내가 계산되기 전엔 바람의 이웃이었습니다 내가 해석되기 전엔 물과 별의 동무였습니다 그들과 말 놓고 살았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소용돌이였습니다 백무산 시인의 작품. 원시 이후,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 난무하는 것은.. 2023. 5. 18.
동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열심히 돌아주던 세탁기가 맛이 갔다 요리조리 살펴보아도 꿈적하지 않고 영 가망이 없다 기사에게 수리를 부탁하니 어쩔 수 없다면서 신품을 들이란다 통돌이 수명 약 10년 드럼 수명 약 7년 사람이나 세간살이나 오래 쓰다 보면 수명이 다하는 법 평소 한집에 동거하며 정을 못 나누고 살았건만 잃고 나서야 진정 수명을 다한 너의 고마움을 안다 살아 묵묵히 봉사를 실천한 너를 보내며 삶을 깨친다 나싱그리 작품이다. 손빨래를 해 본 지가 언제던가 세탁기의 기능이 날로 발전하면서 수명이 다한 구형 세탁기는 어느새 퇴물이 된다. 시제를 '세탁기'로 생각했다가 너무 평범한 거 아닌가 싶어 '동거'라고 붙여 보았다. 2023. 5. 16.
만약 만약 네 주위 모든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너를 비난해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만약 모든 사람들이 너를 의심할 때에도 스스로를 믿으며 그들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면; 만약 기다리면서도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거짓에 당하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미움에 빠지지 않고,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 하지 않고, 너무 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만약 꿈을 꾸면서도 - 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만약 사색을 하면서도 - 사색 자체가 목표가 되지 않는다면; 만약 승리와 패망을 만나도 그 두 사기꾼들을 모두 똑같이 취급할 수 있다면; 만약 네가 말한 진실이 악당들에 의하여 날조되어 바보들의 조롱거리가 되거나, 혹은 네 인생의 모든 것들이 깨어져 버릴지라도, 참아내며, 허리를 굽혀 오래.. 2023. 5. 9.
호외 전통 예술에 대한 반항이란다 유명 미술관 전시실 벽에 바나나를 실물로 드러내 놓고는 근사한 작품이란다 그런데 관람 온, 미학과 한 학생이 사고를 친다 일 억짜리 노란 바나나를 벽에서 떼어 알짜만 빼먹고는 껍질만 다시 붙여놓고는 배가 고파서 그랬단다 작가는 목적이 행위 예술이라며 작품을 망친 것은 아니라며 그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고 이 같은 면죄부에, 일부 소식통은 행위 예술에 행위 예술로 맞장구를 쳤다며 마침내 온전한 작품을 완성했다며 어느 비 오는 날, 호외로 소식을 전했다 나싱그리 작품이다. 이 시를 쓰고 난 후의 소감.. 기사를 짜깁기하는 정도로 시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시가 독자 앞에 가벼워지는 것 이 또한 시인의 숙제다. 2023. 5. 6.
가슴이 쿵쿵거리는 까닭 세상에는 아.름.답.네.요. 멋.있.어.요. 하며 치장한 말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만 진정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입은 말門을 닫고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어쩌면 입보다 말은 먼저 알고 있다 당장 뛰쳐나가고도 싶지만 그의 요란한 발굽에 그의 뛰뚱거리는 몸짓에 그가 일으키는 바람에 혹시라도 아름다운 그것이 놀라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말은 門앞에서 스스로 짧은 비명으로 멈춰선 뒤 발길을 돌려 가슴이라는 초원에서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는 것이다. 이명윤 시인의 '가슴이 쿵쿵거리는 까닭'이라는 시를 만난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상 시마을에서 종종 본인 시를 올리고 또 내 시에도 댓글을 달아주던 시인으로 기억한다. 이즈음의 아름다운 꽃잔치를 보거나 여행 중 혼자 보기 아까운 경치를 보면.. 2023. 4. 29.
백신 건강 검진을 받고는 경고등이 켜진 골다공증을 염려한다 권하는 주사를 맞을까 정기적으로 처방한 약을 먹을까 남은 노년을 걱정한다 주사나 약 보충 없이는 뼈가 점점 약해지며 심하면 숭숭 바람까지 든다 하는데 그래서 일상이 무너지며 인생이 망가진다 하는데 언제부턴가 행복감이 꽃잎처럼 비를 맞고 떨어지는 날이면 눈물과 웃음기를 빼앗기지 않으려 백신을 맞는다 내 마음, 내 이웃을 살펴 습관적으로 자주, 티 나지 않게 감사라는 주사를 놓는다 나싱그리의 자작시를 올린다. 시를, 인터넷 상에 올리면 독자로부터 댓글을 받을 때가 있다. 대개의 경우, 시의 상황을 시인의 일상으로 환기한다. 소설과 달리 시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이웃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 '나.. 2023. 4. 9.
아침 식사 그는 커피를 담았다 찻잔에 그는 우유를 넣었다 커피가 든 찻잔에 그는 설탕을 넣었다 우유를 탄 커피에 작은 스푼으로 그는 저었다 그는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게 한마디 말없이 그는 불을 붙였다 담배에 그는 동그랗게 만들었다 연기를 그는 담뱃재를 털었다 재떨이에 내게 한마디 말없이 내게 아무런 눈길도 없이 그는 일어났다 그는 눌러썼다 모자를 머리에 그는 레인코트를 입었다 비가 내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떠났다 빗속을 내게 한마디 말없이 내게 아무런 눈길도 없이 나는 감싸 쥐었다 손으로 머리를 그리고 울어버렸다. 프랑스 출신 자크 프레베르의 시. 마치 한 장면의 대본을 보는 듯하다. 영화 장면처럼 선명하다. 나는 간절한데, 그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상대인 그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그가 레인.. 2023. 3. 29.
개화 예보 벚꽃 개화 시기를 예보합니다 이달 스무이틀이면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서귀포를 시작으로, 한반도 가까이 제주와 점점이 한려수도가 펼쳐진 남부지방은 스무엿새부터 말일까지, 차령산맥, 소백산맥 등 능선 따라 중부지방은 말일부터 다음 달 초이레,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기타 산간지방은 다음 달 초이레 이후에 개화가 예상됩니다 (아쉽게도, 북은 언제부턴가 벚꽃이 자취를 감추어 생략하고....) 이상 반쪽짜리 우리나라 벚꽃 개화 시기 예보를 마칩니다 나싱그리의 '개화 예보'. 봄꽃들이 한창인 삼월도 중순이 넘어선다. 제가 사는 곳은 서울보다 늦어, 이제 겨우 봉오리가 선다. 남부지방엔 벚꽃 축제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개화 예보에는 북은 자연스럽게 빠져 있다. 벚꽃을 보는 시각도 그렇고, 말 그대로 반쪽짜리 축제다. 2023. 3. 22.
악의 꽃 언제부턴가 꽃대궁은 침대 위를 기어오르는 뱀을 닮아 있다 꽃잎은 자유 부인의 입술을 닮아 있다 어제의 간통 미수가 마음속 깊이 주사를 놓고 마취가 전신에 퍼지면 사람은 온전히 사람이 아니다 꽃봉오리에서는 하얀 진액이 흐른다 우리들은 언덕에 뿌려진 저 꽃씨를 위험하다고 한다 일찍이 인간이 건설한 대로大路 반듯한 질서에 반한다고 한다 누가 그 꽃은 절대 위험한 것이 아니다 그 꽃에서 유전 공학으로 진액을 빼내면 그건 죽은 꽃이다 꽃은 본래의 자연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주장했다가 자의 반 타의 반, 형장刑場의 몸이 된다 나싱그리의 시 '악의 꽃'. 욕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성의 발로다. 다만 그것이 순화되었을 때뿐이다. 그렇지 않고 사회 통념이라는 가치관에 도전하는 경우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023.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