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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처음엔 모두가 한마을이었다 가까웠던 이웃이라도 멀리 떨어져 살면서 나누던 말이 변했고 전하던 글이 달라졌다 세월은 물이 되어 흘렀지만 마음은 유연성을 잃으면서 소통은 점차 어려워졌다 하여, 만인에게 누적된 불통을 해소하고 소통을 선사하기 위하여 오늘날엔 신기술을 등에 업고 실시간 통역 서비스가 등장한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고 함께 엮이면 세상은 빠르게 진화한다 살기 좋아진 마을엔 축제의 장이 선다 나싱그리 시 어쩌면 옛날 옛적에 한마을에서 시작된 언어 그 말과 글들이 점차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분화되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비롯하여 흩어진 오늘날 고려인의 말과 수백 년 전 조선의 말이 하나의 방언이 되었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도 멀어졌는데... 2024. 3. 22.
사랑가 우리 사랑은 말로 주고받는 게 다가 아니에요 우리 사랑은 몸으로 전하는 게 다가 아니에요 사랑은 때로 창가에 내려앉은 세레나데가 되어 가슴 뜨거워지는 마음을 경험하는 거예요 어느 젊은 날 한 번쯤 이런 사랑 노래는 어떠냐며 때마침 봄바람이 부추겼어요 나싱그리 시. 이건 사랑 아니고 저것도 사랑 아니고 특별히 디스할 이유가 없습니다. 봄바람이 부추기길래 시 한번 써 봤어요. 2024. 3. 16.
그리운 바다 성산포 12. 술에 취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이생진 시인이 쓴 '그리운 바다 성산포' 연작시 중 하나다. 쉽게 읽히면서도 예사롭지 않다. 파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남녀가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는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느낌... 함께 술에 취해서는 말이 많아지고 술에 약한 바다의 파도 소리가 유독 더 크게 느껴진다. 2023. 10. 8.
나도 그들처럼 나는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계산이 되기 전에는 나는 비의 말을 새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측량되기 전에는 나는 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해석이 되기 전에는 나는 대지의 말을 받아 적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동산이 되기 전에는 나는 숲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시계가 되기 전에는 이제 이들은 까닭 없이 심오해졌습니다 그들의 말은 난해하여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내가 측량된 다음 삶은 터무니없이 난해해졌습니다 내가 계산되기 전엔 바람의 이웃이었습니다 내가 해석되기 전엔 물과 별의 동무였습니다 그들과 말 놓고 살았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소용돌이였습니다 백무산 시인의 작품. 원시 이후,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 난무하는 것은.. 2023. 5. 18.
가슴이 쿵쿵거리는 까닭 세상에는 아.름.답.네.요. 멋.있.어.요. 하며 치장한 말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만 진정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입은 말門을 닫고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어쩌면 입보다 말은 먼저 알고 있다 당장 뛰쳐나가고도 싶지만 그의 요란한 발굽에 그의 뛰뚱거리는 몸짓에 그가 일으키는 바람에 혹시라도 아름다운 그것이 놀라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말은 門앞에서 스스로 짧은 비명으로 멈춰선 뒤 발길을 돌려 가슴이라는 초원에서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는 것이다. 이명윤 시인의 '가슴이 쿵쿵거리는 까닭'이라는 시를 만난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상 시마을에서 종종 본인 시를 올리고 또 내 시에도 댓글을 달아주던 시인으로 기억한다. 이즈음의 아름다운 꽃잔치를 보거나 여행 중 혼자 보기 아까운 경치를 보면.. 2023.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