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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6

11월의 기도 11월에는 무언가 그리운 일이라도 있다는 듯 살 일이다 ​ 지나온 여름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떠나간 사랑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 11월에는 누군가 사랑할 사람이라도 있다는 듯 살 일이다 ​ 사랑은 종종 이별로 지고 단풍은 언제나 낙엽으로 지지만 ​ 11월에는 어디선가 따뜻한 커피라도 끓고 있다는 듯 살 일이다 양광모 시인의 시.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 빠져 버린 머리카락들 오늘따라 머리가 휑한 느낌 어느덧 올해도 11월, 날씨가 추워서일까 근심이 가라앉지 않고 의욕은 떨어진다. 감각도 무디어지는 것 같다. 양광모 시인처럼 기도라도 해 봐야겠다. 2023. 11. 16.
반달 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서, 직녀 얼레빗 만들어 주었나. 견우님 떠나신 뒤 오지를 않아, 수심이 깊어 푸른 하늘에 걸어 두었는고. 誰斷崑崙玉 裁成織女梳 牽牛一去後 愁擲碧空虛 반달을 소재로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황진이의 시. 밤하늘을 장식하는 달을 바라보는 마음은 시인마다 조금씩 달랐겠지만 무릇 걸출한 시인 치고 달을 노래하지 않았던 시인이 있었을까 2023. 7. 10.
아침 식사 그는 커피를 담았다 찻잔에 그는 우유를 넣었다 커피가 든 찻잔에 그는 설탕을 넣었다 우유를 탄 커피에 작은 스푼으로 그는 저었다 그는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게 한마디 말없이 그는 불을 붙였다 담배에 그는 동그랗게 만들었다 연기를 그는 담뱃재를 털었다 재떨이에 내게 한마디 말없이 내게 아무런 눈길도 없이 그는 일어났다 그는 눌러썼다 모자를 머리에 그는 레인코트를 입었다 비가 내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떠났다 빗속을 내게 한마디 말없이 내게 아무런 눈길도 없이 나는 감싸 쥐었다 손으로 머리를 그리고 울어버렸다. 프랑스 출신 자크 프레베르의 시. 마치 한 장면의 대본을 보는 듯하다. 영화 장면처럼 선명하다. 나는 간절한데, 그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상대인 그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그가 레인.. 2023. 3. 29.
장지葬地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또 하나의 생과 이별하고 있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장지葬地에 모여든 사람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천막 안에 앉거나 서서 급하게 차려진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겼고 생계를 책임진 한 가장家長은 심술 난 바람에 천막 폴대를 굳게 잡고는 놓지 않았다 여느 해처럼 그렇듯 주변에선 마른 도깨비바늘들이 스치는 옷깃에 달라붙어 다시 시작할 곳을 찾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비록 스산하지만 머지않아 봄은 찾아들 것이고 그러면 이곳에도 새싹은 돋고 이름 모를 들꽃도 피어나겠다 나싱그리가 쓴 '장지葬地에서'란 작품이다. 이별하는 슬픔은 잠깐이다. 유족이 아니면 더 그럴 것이다. 장지에서조차 삶은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자연은 우리에게 지혜를 일깨운다. 2023. 3. 17.
님을 보내며 비 갠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푸르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 노랫가락 구슬퍼라. 대동강물은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에 더하네.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고려 때 정지상 시인의 '님을 보내며送人'라는 시. 우리에게 송별시, 이별 시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옛날 대동강을 배경으로 고려인들의 이별의 정한을 이처럼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다. 2023. 1. 7.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 2022.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