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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12

마을 처음엔 모두가 한마을이었다 가까웠던 이웃이라도 멀리 떨어져 살면서 나누던 말이 변했고 전하던 글이 달라졌다 세월은 물이 되어 흘렀지만 마음은 유연성을 잃으면서 소통은 점차 어려워졌다 하여, 만인에게 누적된 불통을 해소하고 소통을 선사하기 위하여 오늘날엔 신기술을 등에 업고 실시간 통역 서비스가 등장한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고 함께 엮이면 세상은 빠르게 진화한다 살기 좋아진 마을엔 축제의 장이 선다 나싱그리 시 어쩌면 옛날 옛적에 한마을에서 시작된 언어 그 말과 글들이 점차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분화되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비롯하여 흩어진 오늘날 고려인의 말과 수백 년 전 조선의 말이 하나의 방언이 되었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도 멀어졌는데... 2024. 3. 22.
사랑가 우리 사랑은 말로 주고받는 게 다가 아니에요 우리 사랑은 몸으로 전하는 게 다가 아니에요 사랑은 때로 창가에 내려앉은 세레나데가 되어 가슴 뜨거워지는 마음을 경험하는 거예요 어느 젊은 날 한 번쯤 이런 사랑 노래는 어떠냐며 때마침 봄바람이 부추겼어요 나싱그리 시. 이건 사랑 아니고 저것도 사랑 아니고 특별히 디스할 이유가 없습니다. 봄바람이 부추기길래 시 한번 써 봤어요. 2024. 3. 16.
말씀 이 세상의 좋은 말씀은 신앙심이 돈독한 목사님만 들려주는 게 아니다 이 세상의 참한 말씀은 부처님을 닮으려는 큰스님만 들려주는 게 아니다 비록 내 귀엔 거칠어도 가까운 이웃의 몇 마디 잔소리를 때로 말씀으로 곱씹어야 할 줄도 알아야 하나니 어쩌면 당신은 바로 내 눈망울에 내려앉은 하늘 내 마음의 우물가에 깃든 부처 나싱그리 시.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생각이 난다. "넌, 신구 부처야" 그랬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부처의 마음, 하늘의 마음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2024. 1. 14.
헌책 사람도 책도 세월의 무게를 못 견디면 감가상각비가 늘어나는지 시나브로 그 가치가 하락하고 마는가 은퇴한 친구는 젊어서부터 사 모은 정들었던 책들을 찾는 이가 있는 것도 고맙다며 인터넷을 통해 헐값에 내놓는다 허나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 헌책에도 예외는 있다 제목은 무소유 1976년 초판 초쇄본 정가 280원 올겨울 찬바람 속 누가, 그 난공불락難攻不落 무소유를 100만 원의 가격으로 사들였다는 소문에 나도 그 마음을 매입할 수만 있다면 나싱그리 시. 초판본 헌책을 제값을 주고 샀다는 얘기는 들어 봤어도 무소유를 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겉 제목 무소유를 속 마음 무소유로 은근슬쩍 바꿔 본다. 2023. 12. 20.
데이트 당신과 나 사이엔 한동안 적당한 거리감과 약간의 아쉬움과 때론 팽팽한 긴장감이 동석하고 있었다 오늘밤엔 서로 마음을 트고 단둘이 만나기로 했다 이전의 다른 동석자 없이 한 자루 촛불이 되어 어둠을 물고 타올라 뜨거워지기로 했다 젊은 연인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뜨거워지는 청춘이 되어 보기로 했다 나싱그리 시 나이가 들면서 감성도 점차 쇠퇴한다. 주위의 젊은 연인들을 바라보며 좋았던 시절을 생각한다. 마음만은 청춘으로 돌아가 그 기분에 젖어 보려 한다. 2023. 11. 5.
우리 사이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나려나 우리 사이 인연이면 또 만나겠지 바쁜 인생일랑 잠깐 벗어 접어 두고 다 같이 둘러앉아 백련차 한잔 하고 가시게나 지쳐 버린 몸뚱이 편히 다스려 준다는 정성 어린 백련차 한잔하고 가시게나 복잡해진 마음 맑게 씻어 준다는 그 영험한 백련차 한잔하고 가시게나 나싱그리 시.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만나 가끔씩 모임을 갖는다. 그래도 마무리는 역시 전통차를 음미하면서 담소하는 것이 그만이다. 2023. 8. 26.
소망 오늘의 당신이 삶에 여유가 없거든 당신이 지나친 옛날 사진 속 그 한때의 서로를 아껴 주고 때묻지 않은 사랑을 나누는 따듯한 마음이었으면 지금의 당신이 삶에 지쳐 있거든 당신이 잊고 산 젊은 시절 사진 속 그 한때의 서로를 바라보고 꺼지지 않는 희망을 노래하는 환한 웃음이었으면 나싱그리 시. 옛날 젊은 시절 추억의 사진들이 공개된다. 하나같이 때묻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누구의 모습이 되었든 옛 사진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2023. 8. 17.
야생화 크로키 애써 가꾸지 않아도 너는 핀다 찾아 나서야 비로소 너는 웃는다 찾아 나서는 우리네 마음 골짜기에 터 잡고 웃는다 네 웃음엔 소리가 없다 네 웃음엔 꾸밈이 없다 나싱그리 시. 애써 가꾸지 않아도 피어나는 야생화. 찾아 나서야 비로소 웃어 주는 야생화. 그 야생화에 대한 느낌을 마음의 도화지에 크로키해 본다. 2023. 6. 6.
미륵사지 석탑 허물어짐도 이토록 견고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니 하늘 받치고 싶은 층층의 꿈 제물처럼 포갠 채 천사백 년 두께로 고이고 있는 창창한 무게 때로 수천 번 마음이 무너져 땅 밑으로 가버리고도 싶으려니 눈 뜰 때마다 쉼 없이 파고드는 분열의 유혹 대님 치듯 동여 묶어 민흘림으로 다잡고 선 그대 발아래 질펀한 고통 구르는 낙엽에 얹어 날리며 홀로 오롯한 그대, 부서진 몸이 이렇게 찬연하다니. 정건우 시인의 '미륵사지 석탑'이라는 시. 살면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일은 고통을 수반한다. 시인은 미륵사지 석탑에서 부서진 몸을 본다. 질펀한 고통을 이겨내고 층층으로 꿈을 쌓아 올리며 홀로 오롯이 선 미륵사지 석탑이야말로 마음을 다스리려 애써본 사람들에게 참으로 견고하고도 찬연한 아름다움으로 온다. 2023.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