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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 산책16

여산폭포 향로봉에 해 비치어 보랏빛 연기 일고 멀리 보니 폭포가 냇물처럼 걸렸구나 나는 듯 곧추 삼천 척을 흐르니 은하가 저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옴인가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로 유명하다. 원제原題는 '望廬山瀑布'. 우리나라 개성에 박연폭포가 있다면 중국 강서성엔 여산폭포가 있다. 후세에 이백의 시를 일부 모방한 듯한 시편들이 흔하게 나타난다. 폭포 시의 원조 격이라 할까 2023. 8. 4.
눈(雪) 1 천황天皇씨 인황人皇씨가 돌아가셨나, 온 산 나무들 소복을 입었네. 낼 아침 해님 와서 문상할 때 이 집 저 집 처마끝마다 눈물이 뚝뚝뚝.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明日若使陽來弔 家家檐前淚滴滴 조선조 방랑 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이 눈을 노래한 시다. 눈 내린 순백의 모습을 소복을 한 세상으로 대하고 날이 밝아 해님이 문상하면 집집마다 눈물을 떨군다는 표현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인상적이다. 2023. 7. 11.
반달 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서, 직녀 얼레빗 만들어 주었나. 견우님 떠나신 뒤 오지를 않아, 수심이 깊어 푸른 하늘에 걸어 두었는고. 誰斷崑崙玉 裁成織女梳 牽牛一去後 愁擲碧空虛 반달을 소재로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황진이의 시. 밤하늘을 장식하는 달을 바라보는 마음은 시인마다 조금씩 달랐겠지만 무릇 걸출한 시인 치고 달을 노래하지 않았던 시인이 있었을까 2023. 7. 10.
뒤에야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켜본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줄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이전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정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 ​靜坐然後知平日之氣浮 守默然後知平日之言躁 省事然後知平日之費閒 閉戶然後知平日之交濫 寡欲然後知平日之病多 近情然後知平日之念刻 중국 명나라 때 진계유陳繼儒의 '뒤에야'然後 라는 시입니다. 우리네 인생, 지난 일을 뒤돌아보면 참으로 아쉬운 점이 많고...... 그래서 뒤늦게 깨닫는 바도 있기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인데요. 일찍이 공자의 제자인 증자는 하루 세 번 뒤돌아본다는 삼성三省을 이야.. 2023. 5. 27.
하늘을 이불 삼고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 삼아 산을 베고 누우니 달은 촛불이요 구름은 병풍이요 바다는 술동이네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매 장삼자락이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일세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大醉居然仍起舞 却嫌長袖掛崑崙 조선 때 진묵대사震默大師의 시로 '한국불교사화韓國佛敎史話'에 나온다. 선승이면서도 통속적인 틀에 머물지 않는 그의 호방하고 자족적인 삶을 상상해 본다. 동시대 사명대사라면 모르는 이가 있을까만 대사는 일반 대중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상의 풍류와 호연지기浩然之氣가 흠씬 느껴지는 시를 접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을 누가 이처럼 통 크게 표현한 적이 있었나 싶다. 2023. 3. 26.
연밥 따기 노래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秋淨長湖碧玉流 荷花深處繫蘭舟 逢郞隔水投蓮子 遙被人知半日羞 허난설헌의 시 '연밥 따기 노래采蓮曲'다. 예부터 연꽃을 소재로 한 연애戀愛 시가 많다. 민요로 전해오는 노래도 있다. 요즘처럼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허용치 않던 시대이지만 애틋한 연애의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감이 간다. 2023. 2. 12.
진달래 돌 틈새 뿌리 위태로워 잎이 쉬이 마르니 바람과 서리에 꺾이고 잘린 것으로만 알았네 들국화는 벌써 가을의 풍요 자랑하나 바윗가 겨울 추위 견디는 소나무 부러우리라 푸른 바닷가 향기 품은 애잔함이여 누가 능히 붉은 난간으로 옮겨 주리오 여느 초목에 그 품격을 비할까 보냐 나무꾼 눈에 띌까 두려울 뿐이네 石罅根危葉易乾 風霜偏覺見摧殘 已饒野菊誇秋艶 應羨巖松保歲寒 可惜含芳臨碧海 誰能移植到朱欄 與凡草木還殊品 只恐樵夫一例看 고운孤雲 최치원의 시, '두견杜鵑'. 진달래를 자신을 빗대어 노래했을 거라는 설이 관심을 끈다. 당나라에 유학 가서는 재능을 인정받기는 했으나 어쨌든 외국인이었고 고국 신라에 와서도 6두품이라는 신분을 안고 살아야 했을 터. 품었던 뜻을 펼쳐보고 싶었던 시인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2023. 1. 24.
우물 속의 달 산승이 달빛을 탐하여 병 속 가득, 달빛 담아 물을 길었네. 절에 돌아오면 바로 깨닫게 되나니 병 기울면 달 또한 없다는 것을. 山僧貪月色 幷汲一甁中 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 고려 때 이규보의 유명한 시 '우물 속의 달井中月'. 현직을 물리며 불교에 심취했던 말년의 시로 보인다. 시인의 굴곡진 인생사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읽는 이의 마음에 더 와닿는 시다. 2023. 1. 16.
님을 보내며 비 갠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푸르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 노랫가락 구슬퍼라. 대동강물은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에 더하네.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고려 때 정지상 시인의 '님을 보내며送人'라는 시. 우리에게 송별시, 이별 시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옛날 대동강을 배경으로 고려인들의 이별의 정한을 이처럼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다. 2023.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