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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신혼 시절 한동안 손가락에 끼웠던 다이아가 박힌 금반지 아내의 성화에도 당기지 않는다는 핑계로 헤어진 그 반지를 잊고 살았는데 삼십여 년을 지나서도 눈에 선한 반지 몇 해 전부터 집안 구석구석 아무리 뒤져 봐도 반지가 없다 아뿔싸, 반지는 주인에게 한 마디 귀뜸도 없이 어디론가 도망친 걸까 정 없는 내가 그렇게 싫었을까 이미 남의 손에 닿아서 숫자로 변했을까 나싱그리 시 엄연히 내 소유라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정을 붙이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2024. 3. 24.
밥그릇 "밥은 드셨나요?"가 안부 인사가 되고 밥 많이 묵으라는 덕담이 오가던 시절 한지붕 가족으로 만나 마주한 밥상머리엔 부족한 것 많아도 도타운 정만큼이나 유독 밥그릇이 컸지 아침밥 거르는 일이 예사가 된 오늘 단출해진 밥상머리에서 밥그릇을 마주한다 창밖은 아직 밥그릇 싸움으로 소란스러운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곁 지키며 말없이 제 몫을 다하는 고만고만한 그릇들 나싱그리 시. 밥그릇이란 말에는 함께한 사람들의 정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밥그릇이란 말이 제 밥그릇 챙긴다는 의미로 퇴색해 버렸다. 밥그릇의 성정이 변한 건 아닐 테고 인심이 변했다고 할밖에... 2024. 3. 8.
마음의 통장 사람들은 마음에 통장 하나씩 지니고 산다 아름다운 추억을 알뜰살뜰 저금하고 따스한 정을 모아 저금하고 산다 마음의 여유가 졸아 바닥 드러내는 걸 경계하며 산다 여유라는 저금이 텅장이 되고 나면 자신도 이웃도 내 안중에 없는 법 때로 일부 할애하여 자신을 위해 내어 쓰고 간간이 이웃과 나누기 위해 꺼내 쓰고도 마르지 않는 마음의 통장 하나씩 지니고 산다 나싱그리 시. 오늘 아침, TV에서 '아침 마당'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통장 얘기를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숫자가 아닌 마음의 통장 같은 걸 들먹이고 있었다. 그렇게 내 마음에 자리해 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한 편의 시로 태어난다. 2024.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