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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 산책16

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꽃을 사이에 두고, 술 한 병 벗도 없이 홀로 마시네 잔 들고 밝은 달 청하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구나 달이야 본래 술을 못 마시고 그림자는 나만 따라다니니 잠시 달과 그림자 벗하여 이 봄날 즐겨보자꾸나 내가 노래하면 달은 배회하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 어지럽네 깨어 있을 때 함께 즐기고 취한 후에는 각자 흩어지니 얽매임 없는 영원한 사귐 먼 은하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 . 그 옛날 낭만주의자였던 시인은 꽃 만발한 정자에서 달과 그림자까지 청해 술을 마신다. 얽매임 없는 영원한 사귐을 먼 은하까지 연결시.. 2022. 12. 25.
봄날의 소망 나라는 파국을 맞았으나 산하는 그대로이고 성에는 봄이 와 초목만 우거졌네 울적한 마음 꽃 보고도 눈물 흩뿌려지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마음이 놀라네 전란 봉화가 석 달이나 이어지니 집에서 온 서신은 만금보다 귀하구나 흰머리 긁을수록 더 짧아져 욕심도 없어지고 비녀 꽂기도 힘들구나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춘망春望'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전쟁은 백성들을 힘들게 한다. 세파에 힘든 시인의 자연을 바라보는 마음 하며 가족을 그리는 마음을 잘 드러낸다. 일상의 작은 욕심마저 희미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2022. 12. 25.
까르비의 시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 마라 그대 몸 안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다 ​ 그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으라 수천 개의 그 꽃잎 위에 앉아서 ​ 정원 안팎으로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움을 보라 15세기 인도의 전설적인 시인 까르비.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아름다움을 밖에서 찾지 말라고 한다. 자신 안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으라 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수천 개의 꽃잎을 안은 연꽃 같은 아름다운 삶을 살라고 한다. 2022. 12. 11.
별을 노래하다 밤 깊어 맑은 달 아래에서 뭇별이 한창 반짝거리네 옅은 구름으로는 가리지 못하고 찬바람 불면 빛이 더 반짝이네 진주알 삼만 섬이 파란 유리에서 반짝반짝! 허무에서 별빛이 무수히 일어나 우주의 원기를 북돋네 부슬부슬 이슬꽃 내리고 동쪽에는 은하수 흐르는 소리 누가 천체의 운행을 주관할까? 내 조물주에게 물어보리라 夜深淸月底 衆星方煌煌 微雲掩不得 朔風就有光 眞珠三萬斛 磊落靑琉璃 群芒起虛無 元氣乃扶持 霏霏露華滋 明河聲在東 天機孰主張 吾將問化翁 이좌훈李佐薰의 한시 '중성행衆星行' 조선 영조 때 시인으로 젊어서부터 시를 잘 썼다고 한다. 별을 노래한 고전시가 흔하지 않아, 우선 관심을 끈다. 비유도 현대시 못지않게 뛰어나다. 요즘 사람들은 살아가느라 바빠서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설사 밤하늘을 쳐다본다 해도.. 2022. 11. 30.
청산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내려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내려놓고 탐욕도 내려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憎兮 如水如風而終我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怒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 고려 말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시. 노래로도 불려져 우리들 귀에 익다. 인생을 살면서 마음을 다스리려면 사랑과 미움, 성냄과 탐욕 모두 내려놓을 대상일 뿐이다. 2022. 11. 26.
춘향전에 나오는 한시 황금 술동이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네 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구나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춘향전에 나오는 한시로 작자는 미상. 어사 이몽룡이 읊었던 시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비유가 안성맞춤이다. 명나라 작가 구준丘濬의 '오륜전비伍倫全備'에 나오는 율시를 일부 변형했다는 설이 있다. 2022. 11. 23.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널리 알려진 시조. 김천택이 펴낸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추상적인 시간을 베어내고 이불속에 넣고, 꺼내어 붙여서 늘이는 그녀의 감성이 놀랍다. 임에 대한 진한 사랑과 애틋한 그리움을 너무나도 잘 드러낸다 송도삼절松都三絶에 그녀를 포함시킨 건, 시적 재능을 봐서도 합당하다는 생각이다. 2022.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