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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13

미륵사지 석탑 허물어짐도 이토록 견고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니 하늘 받치고 싶은 층층의 꿈 제물처럼 포갠 채 천사백 년 두께로 고이고 있는 창창한 무게 때로 수천 번 마음이 무너져 땅 밑으로 가버리고도 싶으려니 눈 뜰 때마다 쉼 없이 파고드는 분열의 유혹 대님 치듯 동여 묶어 민흘림으로 다잡고 선 그대 발아래 질펀한 고통 구르는 낙엽에 얹어 날리며 홀로 오롯한 그대, 부서진 몸이 이렇게 찬연하다니. 정건우 시인의 '미륵사지 석탑'이라는 시. 살면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일은 고통을 수반한다. 시인은 미륵사지 석탑에서 부서진 몸을 본다. 질펀한 고통을 이겨내고 층층으로 꿈을 쌓아 올리며 홀로 오롯이 선 미륵사지 석탑이야말로 마음을 다스리려 애써본 사람들에게 참으로 견고하고도 찬연한 아름다움으로 온다. 2023. 1. 29.
꽃 핀다 꽃 진다 지난겨울 어떻게 살았느냐고 차꽃 필 때 동백꽃 필 때 매화꽃 필 때 꽃향 머금고 좋았노라고 지난겨울 또 어떻게 살았느냐고 차꽃 질 때 동백꽃 질 때 매화꽃 질 때 그때마다 겨울 산에 등 기대고 먼 산 보았노라고 꽃 진 겨울 이마에 생 바람 불어도 참 맑았노라고 한철 꽃 피고 꽃 지는 마음아 이 세상 어찌 살 것이냐 묻는다 해도 꽃 핀다 꽃 진다 할 뿐 석여공 시인의 '꽃 핀다 꽃 진다'라는 시. 산문山門에 들어 마음을 닦는 스님으로 산다. 시심도 맑은 시심이려니와 언어를 다루는 내공이 예사롭지 않다. 2023. 1. 17.
장례식장에서 오래전 식장에서 한 추기경이 추모사를 했다 그는 이 세상에 나약한 인간으로 왔다가 용서가 되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이제 돌아간 그는 더 이상 힘센 독재자가 아니다 그제는 식장을 지나다가 한 과학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더도 덜도 아니고 지하 2미터 아래, 흙으로 갔다 그런데 여긴 아름다운 별이다 단지 그걸 모르고 갔다 이곳에선 주검이 된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 빈소에서는 조문을 온 철학자가 있어 떠난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는 내 마음속에 아직 살아 있는 친구 자네는 뭇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인 어디서라도 마음이 기억하는 한 사라지는 것은 없다 나싱그리의 '장례식장에서'라는 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하나님 앞에서는 예외 없이 한 명의 인간일 뿐이고 물리적인 시각에서 보면, .. 2023. 1. 3.
마음은 무게가 없다 안동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할머니 한 분이 자기 키보다 더 큰 배낭을 짊어지고 거기다가 두 손에는 또 보따리까지 들고 내린다. 배낭에는 마늘이 들어 있고, 보따리에는 애호박 몇 개, 고추와 참깨가 들어 있다. 아들네 집인지 딸네 집인지 가는가 보다. 지하철 강변역 쪽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할머니, 이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들고 가시려고 가져오셨어요?" 하며 보따리를 모두 건네받아 들어 드리자, "마음을 담아 왔지 별 거 아니야!" 한다. 그러면서 마음은 무게가 없다 한다. 마음은 아무리 담아 와도 무겁지 않다고 한다. 마음은 아무리 가져와도 힘들지 않다 한다. 윤동재 시인의 '마음은 무게가 없다'라는 시. 누구에게는 올 한 해 마음이 힘들었을 것이다. 허나 마음은 가꾸기 .. 2022.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