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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숲을 찾아서54

소망 오늘의 당신이 삶에 여유가 없거든 당신이 지나친 옛날 사진 속 그 한때의 서로를 아껴 주고 때묻지 않은 사랑을 나누는 따듯한 마음이었으면 지금의 당신이 삶에 지쳐 있거든 당신이 잊고 산 젊은 시절 사진 속 그 한때의 서로를 바라보고 꺼지지 않는 희망을 노래하는 환한 웃음이었으면 나싱그리 시. 옛날 젊은 시절 추억의 사진들이 공개된다. 하나같이 때묻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누구의 모습이 되었든 옛 사진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2023. 8. 17.
몸살 열대 저기압에서 태동한 태풍 카눈의 향방은 안갯속 마이 웨이를 고집하며 후끈한 한반도를 한바탕 훑다가 또 다른 태풍 란에게 바통을 넘긴다 태평양 한가운데 한 점 섬 하와이에서는 붉은 화마가 뿌연 연기를 토하며 얼굴을 할퀸다 대륙을 가로질러 멀리 북유럽 해안 살기 좋았던 노르웨이에도 때아닌 물난리가 습격한다 급격히 나빠진 우리 지구촌의 건강 상태 하늘과 땅이 몸을 뒤척일 때면 거기 뿌리내린 사람과 초목까지 심한 몸살을 앓는다 나싱그리 시. 태풍 카눈이 지나고 잠시 마음이 안정된다. 사방에서 매미 소리가 한창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해안가 주변을 산책한다. 건강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다. 2023. 8. 13.
Q 멀리서는 선명해도 가까이 다가서면 시야視野에서 사라지는 빨주노초파남보 그 무지개 너머의 무수한 알갱이들 같은 것 나노(Nano)의 나라에서 만나는 제각각의 유의미한 어떤 율동 같은 것 비록 항구에 정박할 순 없어도 시행착오 끝 안개를 벗는 우주의 바다 우리 안의 상념처럼 흩어졌다 모이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미아迷兒의 몸짓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직은 물음표 같은 것 나싱그리 시. 시제가 Q라니? 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덧붙여 말하면 Quantum(양자)로 읽어도 좋고 Question(물음)으로 읽어도 좋다. 요즘은 과학과 철학이 재회하고 과학과 종교가 조우하는 시대다. 어쩌다 양자 역학에 대해 배우고 궁금증을 키운다. 2023. 8. 6.
여산폭포 향로봉에 해 비치어 보랏빛 연기 일고 멀리 보니 폭포가 냇물처럼 걸렸구나 나는 듯 곧추 삼천 척을 흐르니 은하가 저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옴인가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로 유명하다. 원제原題는 '望廬山瀑布'. 우리나라 개성에 박연폭포가 있다면 중국 강서성엔 여산폭포가 있다. 후세에 이백의 시를 일부 모방한 듯한 시편들이 흔하게 나타난다. 폭포 시의 원조 격이라 할까 2023. 8. 4.
한눈 판 사이 인생길에서 놓친 아쉬운 것들 저 하늘 구름처럼 흘러가고 더운 여름날은 간다 이른 입추가 지나고 이 산 저 산 울긋불긋 단풍과 함께 가을이 찾아오면 우리 서로 보고픈 사람 맘껏 만나 보고 사랑하고픈 사람 품에서 흠씬 젖어 보자 희미한 사진첩에서 그리운 얼굴도 소환하고 청춘 시절의 책갈피에 끼워 둔 아름다운 추억들까지 살려내자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지만 오늘 우리, 무한 가상 공간에서 스마트하게 꾸민 살가운 톡으로 만나자 나싱그리 시.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인생길에서 놓친 아쉬운 것들 더 늦기 전에 만나 봐야겠습니다. 오늘은 무한 가상 공간에서의 살가운 톡으로 만나 봅니다. 2023. 8. 3.
정장 그녀는 귀가 닳게 말하곤 했다 자기는 작업복이 싫었단다 그래서 그이의 출근을 위하여는 한결같이 새하얀 와이셔츠와 빨간 넥타이를 준비했다 그러던 그녀가 나이를 먹더니 걍 편한 캐주얼이 좋단다 물론 그도 삶을 조이는 넥타이는 사양이다 그래서 요즘은 자연스럽게 그들 부부의 정장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대부분의 계절을 옷장 안에서 지낸다 나싱그리 시. 요즘엔 반듯한 정장보다 편한 캐주얼 차림이 좋다. 격식을 차린 시보다 자연스럽고 편한 시가 좋다. 2023. 7. 31.
무명 시인 요즘 같은 인플레 시대에 단돈 이천 원 게다가 무한 리필 옛 입맛을 우려내는 국숫집 할머니는 마음까지 푸짐한 무명 시인 하루 시장기를 덜고 치를 돈 없어 냅다 도망치는 한 젊은이의 등을 향해 던져진 십여 년을 고이 간직한 말 뛰지 말어, 다쳐! 배고프면 또 와 나싱그리 시. 보내온 SNS가 시가 된다. "뛰지 말어, 다쳐! 배고프면 또 와" 라는 할머니의 따듯한 말은 일본의 전통 단시短詩 '하이쿠俳句'를 닮아 있다. 2023. 7. 29.
청동 염소 은행 앞에 청동 염소가 서 있다 엉덩이가 푸른, 생식기마저 푸른 염소, 아무것도 생식하지 않을 이 염소는 불멸이다 허수경 시인의 '청동 염소'. 염소는 번식력이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은행 앞에 선 염소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정작 청동 염소는 생식生殖을 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불멸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하긴 자본의 증식이나 동물의 번식을 떠나 오래전 청동기 문명을 입힌 저 염소 상像이 소멸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2023. 7. 29.
강원도의 돌 나는 수석水石을 전연 모르지만 참 이쁘더군, 강원도의 돌. 골짜기마다 안개 같은 물 냄새 매일을 그 물소리로 귀를 닦는 강원도의 그 돌들, 참, 이쁘더군. 세상의 멀고 가까움이 무슨 상관이리. 물속에 누워서 한 백 년, 하늘이나 보면서 구름이나 배우고 돌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더군. 참, 이쁘더군. 말끔한 고국故國의 고운 이마, 십일월에 떠난 강원도의 돌. 마종기 시인이 독자와 대화하듯 써 내려간 시. 시제는 그냥 돌도 아니고 '강원도의 돌'이다. 거기다 말끔한 고국의 이마를 닮은 돌. 돌에 투영된 시인 자신의 인생관에 고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까지... 느낌이 온다. 2023.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