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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숲을 찾아서54

술에 대하여 예부터 하늘과 내통할 때 귀하고 성스럽게 두 손으로 올리던 술 장진주 將進酒 라 하여 꽃과 더불어 즐기고 시 한 수 읊는데 빠져선 서운하다는 신선놀음 술 요즘 애주가를 만나서는 인생이 재미없다며 술 스트레스 푼다며 술 사회생활 계속하려면 요령껏 마셔야 한다는 그놈의 술 옛 성현의 말씀처럼 그리고 가까운 부모님의 잔소리처럼 주량껏 마시되 절대 주정하진 말라는 몸도 마음도 해치고 만다며 경계하라는 술 나싱그리 시. 술에 대하여 느낌은 많았지만 그동안 시를 쓸 생각을 못했다.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술에 관해서라면 회한도 많고 좋은 추억도 있다. 2023. 10. 20.
아름다운 관계 바위 위에 소나무 저렇게 싱싱하다니 ​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도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 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 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2023. 10. 15.
전쟁과 아이 지구촌 어드메 마구잡이 폭격이 있던 날 한 아이가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혼자 울먹이며 제발 제발 하면서 호소를 했어요 "난 어른들의 전쟁이 싫어요 승자 없는 전장에서 고아로 남았어요" 뒷짐만 지고 구경하는 세상사람들일지라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총격이 이어졌고 결국 아이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지요 나싱그리 시.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한 목소리가 있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아이는 그 말을 내뱉었다는 이유로 본인을 포함해 일가족이 살해당했고. 그리고 지금, 지구촌 전쟁고아들이 호소하는 목소리는 "난 어른들의 전쟁이 싫어요". 2023. 10. 14.
그리운 바다 성산포 12. 술에 취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이생진 시인이 쓴 '그리운 바다 성산포' 연작시 중 하나다. 쉽게 읽히면서도 예사롭지 않다. 파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남녀가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는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느낌... 함께 술에 취해서는 말이 많아지고 술에 약한 바다의 파도 소리가 유독 더 크게 느껴진다. 2023. 10. 8.
반딧불이 노란 달덩이가 사뿐히 내려와 손을 내민다 그 곁의 샛별도 함초롬히 피어나 눈을 맞춘다 무대 뒤로 숨어 버린 태양의 옷깃을 잡아끈다 저 하늘에 뜬 달과 그 곁을 지키는 샛별과 무대 뒤의 붉은 태양과 내가 발을 딛고선 푸른 지구랑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춘다 여름과 가을 사이 밤하늘 한가운데 반딧불이들을 찾아 나선 난 한 마리 떠도는 미물 나싱그리 시. 반딧불이가 내는 빛을 본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저 밤하늘의 달과 별과 무대 뒤에 숨은 태양 내가 사는 푸른 지구 또한 반딧불이를 생각나게 한다. 2023. 10. 2.
1인분 대가족은 옛 추억 시대가 점차 변하더니 이제 우리나라도 1인 가구가 대세란다 하여 편의점을 찾는 요즘 보통 사람들에게 간편식 1인분은 갖가지 맛으로 생겨나 손님 대접을 받는다 설사 1인 가구가 아니어서 가족이 함께 모여 산다 한들 근무일과 출퇴근 시간이 각기 다른 경우가 다반사 항시 부족한 생활비도 생활비려니와 음식 솜씨 또한 딱히 없으니 오늘도 살갑게 대화할 이 없이 본인이 알아서 그렇게 1인분으로 살아가는 삶 나싱그리 시. 출생률도 급격히 떨어지고 어느덧 1인 가구가 대세인 요즘이다. 설사 1인 가구가 아니더라도 주위엔 1인분으로 사는 경우도 많다. 2023. 9. 21.
마릴린 먼로 지붕 위에 마릴린 먼로가 앉아 있다 박꽃 진 자리 새 봉분처럼 둥근 엉덩이 하얗게 까붙였다 구멍 뚫린 어둠에 바짝 붙어 앉아 눈을 반짝이는 별들 찰칵, 몰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샤넬 No.5 향기가 찍혀 나온다 아찔한 외출이다 최정란 시인의 시. 지붕 위의 둥근 박을 마릴린 먼로의 엉덩이에 비유하는 등 시인의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녀는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 2023. 9. 16.
소모품과 부속품 하늘까지 흐린 어떤 날 사람들은 참다 참다 끝내 절망하며 그들과 아무 상관없는 소모품과 부속품을 가져와 들먹였다 한때 화려한 미명 하에 총알받이가 된 병사들은 소모품이 되어 버렸고 언제부턴가 갑질에 시달려 온 학교 노동자들은 부속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만약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소모품이 없었다면 그리고 빠져서는 안 될 소중한 부속품이 없었다면 나싱그리 시. 소모품 나부랭이, 부속품 나부랭이 그렇게 한쪽으로 몰아 비하할 일만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꼭 필요한 소모품 빠져서는 안 될 소중한 부속품이 많다. 2023. 9. 12.
못생긴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딜레마인데 나는 어떻게든 나를 감추고 털고 닦고 깎고 칠하며 척, 하고 산다 척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있는 척 아는 척 착한 척 뒤에서는 호박씨 까지만 아닌 척,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를 봐주는 건 그래도 척 때문인데 척은 처 억 탄로가 난다 못생긴 것은 아무리 가려도 1분 안에 탄로가 나고 무식한 것은 길어야 한 시간 안에 없는 것은 한 달 안에 척하지 않는 것은 1년 안에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1년 이상 남지 못한다 끊임없이 척을 생산해야 한다 1분씩 한 시간씩 한 달씩 1년씩 오늘도 나를 지탱해 주는 척! 원구식 시인의 '척'이라는 시. 우리는 척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는지도 모른다. .. 2023.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