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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소개103

바다와 예술 푸른 바다를 무대로 따가운 햇살 한가운데 한 어부가 멀리 대서양에서 표류한 인어공주의 입술을 막 훔칠 기세다 동풍을 등진 어부의 거친 손은, 어망漁網을 벗어나려 하나 어쩌지 못하는 인어공주를 품에 안는다 어부의 두 다리에 묶인 신화 속 그녀의 꿈이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나싱그리의 시 '바다와 예술'. 집 근처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조형물을 하나 만난다. 고목의 본래 느낌을 잘 살린 예술작품이다. 바다와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시심이 일어선다 마치 바다 위에 빛나는 저 비늘처럼.... 2023. 1. 24.
무인기無人機 탑재된 임무를 띠고 몸을 낮춰 선을 넘는다 눈을 부릅뜬 채 비밀스러운 탐사를 한다 우리들은 철저하게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아바타다 너와 내 안에는 예비된 지령만 남고 정작 주인이 되어야 할 사람이 없다 같은 하늘을 날면서도 서로를 품어줄 마음이 내려앉을 곳은 아직 없다 나싱그리의 시 '무인기無人機' 가끔은 사회적인 이슈가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반도는 아직 휴전 중.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이 나라에 살면서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념의 카테고리에 갇혀 무인기를 바라봐야 할까 그냥 무인기를 무인기로만 이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3. 1. 15.
난중일기 -경자년庚子年 삼월 열이레 안면에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한다. 휴대폰으로는 안전 안내 문자가 뜬다. 뉴스 속에서 어제의 이웃이 확진자가 된다. 오늘의 가족이 유증상자가 되어 격리된다. 백신은 상용화는 아직 멀고 아무나 가까이하기에는 위험한 소리 없는 전장戰場 그리고 도시마다 갈 곳을 잃은 개미들의 행렬 그해 봄은 또 푸른 하늘을 몰고 찾아왔지만 꽃이 피기도 전 사람들의 마음은 움츠러들어 무더기로 무너져 내렸다. -경자년 오월 초열흘 해마다 웃음으로 환했던 꽃밭에서는 오월을 맞아, 꽃의 모가지가 사정없이 잘려 나갔다는데 긴급재난지원금이 참으로 오랜만에 어렵게 시장에 풀렸다는데 어제는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다시 코로나가 번졌다는 소식 오늘은 오랜 가뭄 끝에 이 세상에 고마운 빗발이 떨고 막 밭일을 끝내고 집.. 2023. 1. 9.
알림판 단기 모년 모월 모일 하늘텃밭 운영을 종료합니다 그동안 이용했던 장비 및 시설물들 서운한 마음까지 모두 철거 부탁드립니다 관리자 백 뙤약볕에 우뚝 선 알림판 뒤통수를 올여름은 호박넝쿨이 휘감고 보란 듯이 자란다 나싱그리의 '알림판'. 시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종종 주변의 일상어들이 시어가 된다. 마지막 5,6연에서 반전의 묘미를 노렸다. 2023. 1. 7.
장례식장에서 오래전 식장에서 한 추기경이 추모사를 했다 그는 이 세상에 나약한 인간으로 왔다가 용서가 되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이제 돌아간 그는 더 이상 힘센 독재자가 아니다 그제는 식장을 지나다가 한 과학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더도 덜도 아니고 지하 2미터 아래, 흙으로 갔다 그런데 여긴 아름다운 별이다 단지 그걸 모르고 갔다 이곳에선 주검이 된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 빈소에서는 조문을 온 철학자가 있어 떠난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는 내 마음속에 아직 살아 있는 친구 자네는 뭇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인 어디서라도 마음이 기억하는 한 사라지는 것은 없다 나싱그리의 '장례식장에서'라는 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하나님 앞에서는 예외 없이 한 명의 인간일 뿐이고 물리적인 시각에서 보면, .. 2023. 1. 3.
봄비 간밤에 고운 님 울고 가셨는지 겨울이 시새움하는 새벽길엔 살포시 젖어서 흙내음만 날리고 고운 님 스쳐간 발자국 소리는 쫑긋 귀 기울여 본들 기척도 없네 어젯밤 고운 님 눈물 보였는지 새봄이 뒷걸음치는 출근길엔 웃을 듯 말 듯 꽃봉오리만 반기고 고운 님 나직이 속삭이던 모습은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간 곳이 없네 나싱그리의 시 '봄비'. 세상살이에 바쁘다 보니, 살면서 애틋한 감정을 찾기 어렵다. 아파트 입구 길가에는, 간밤에 살포시 내려앉은 봄비의 흔적만 남았다. 못내 아쉽다. 내게 그런 봄비는 고운 님과 같은 존재다. 2022. 12. 30.
등산에 대하여 산을 오른다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묻지 마라 거기 산이 있어 산에 오를 뿐 산 사나이로 태어나 그곳에서 떠나는 것도 멋진 인생이라고 당신은 말한다 어떤 이는 정상을 기피한다 오르고 나서 안개와 구름 아래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기는 하지만 거긴 너무 춥고 외로울 수 있다고 너무 오래 머물 곳은 아니라고 산을 오른다 정상이 목표가 아니어도 좋다 몸을 쉬어갈 산기슭이면 어떻고 찬바람 가시고 봄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느 산중턱이어도 좋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다, 산을 더불어 오르는 것도 이 세상에서 힘들지 않게 하지만 산길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보는 이의 마음을 때로 아름답게 물들인다는 것을 그렇게 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하나로 나 있지는 않다는 것을 나싱그리의 시 '등산에 대하여'. 나이를 먹고 철이 .. 2022. 12. 28.
쑥대밭 여기는 쑥의 나라 이른바 쑥들의 전성기 밭갈이 않고 묵혀 둔 밭을 쑥의 무리들이 은근슬쩍 주인인 양 점령하고 있다 사람들이 한눈판 사이 마음껏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뜻을 제대로 새겨야 하는데 본래 의미를 변질시켜 아무 생각도 없이 덤터기를 씌운단 말야 까놓고 얘기해서 우리 모두 같이 사는 세상인데 오로지 본인만 챙기는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지 내 삶의 터를 감히 쑥대밭이라니 나싱그리의 '쑥대밭". 인류세에선 지구촌 전체가 사람 중심이다. 자연은 종속된 부속물일 뿐. 쑥대밭은 쑥들의 치열한 삶의 터이겠지만 사람들에겐 한낱 쓸모없는 방해물이라는 생각에 입장을 바꿔 시를 써보았다. 2022. 12. 25.
산책 예찬 기지개를 켜며 눈뜨는 가로수를 따라서 하늘을 하얗게 수놓는 뭉게구름을 보면서 그렇게 자연의 연인이 되어 나란히 길을 걷는다는 건 삶을 사색하는 것이다 처음엔 가벼운 발걸음으로 잠시 일상을 훌훌 벗어 버리고 나만의 시간과 휴식을 위하여 혼자 산책을 나서 보자 내 몸이 신발이 되어 걷고 또 걷다가 마음의 회랑에 이르러서는 일렬종대로 서서 환영식에 참여하는 아름드리나무들과 가까이 호흡해 볼 일이다 나무들끼리 모여 숲이 되는 이야기를 들어 봐도 좋고 내면의 곤충 호텔과 나뭇잎 관찰소를 만나 봐도 좋다 먼바다가 뭍이 그리워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귀 기울여도 보고 갯벌이 숨겨온 어패류의 생활상을 살펴보며 느껴지는 삶 그렇게 산책은, 자연이라는 연인의 마음까지 알아가는 일이다 나싱그리의 '산책 예찬'이라는 시. 산책코.. 2022.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