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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산책

가엾은 리얼리스트

by 하늘텃밭 2024. 4. 8.

시골길이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흔해 빠진 아카시아 향기에도 넋을 잃고

촌뜨기 시인인 내 눈은

꽃그늘에 그늘진 농부의 주름살을 본다

 

바닷가가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낙조의 파도에 사로잡혀 몸 둘 바를 모르고

농부의 자식인 내 가슴은 제방 이쪽

가뭄에 오그라든 나락잎에서 애를 태운다

 

뿌리가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

가난한 시대의 가엾은 리얼리스트

나는 어쩔 수 없는 놈인가 구차한 삶을 떠나

밤별이 곱다고 노래할 수 없는 놈인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김남주 시인...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리얼리스트로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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