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시인의 '여승女僧'.
낯익지 않은 시어가 눈에 띄는데 이해를 돕자면
가지취는 산에 나는 취나물의 일종이라 하며
금점판은 금광캐는 광산을 떠올리면 될 듯...
섶벌은 재래종 일벌, 머리오리는 머리카락을 의미한다.
여승이 되기 전까지의 삶의 애환은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당시 궁핍한 시대적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시인은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북으로 가면서,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시도 한 편 남겼다 하는데
그건 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후 시를 접었다.